‘골든타임 6분의 기적’…신호가 멈추고, 길이 열렸다
입력 2025.07.07 (07:00)
수정 2025.07.0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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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사는 32살 양유덕 씨는 지난해 12월 제2의 삶을 선물 받았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심정지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날, 신혼 1개월 차였던 그는 제주시 한림읍의 한 야구장에서 동호회원들과 오전부터 야구 게임에 한창이었습니다.
"그날 새벽 4시쯤 자다가 깼어요. 갑자기 숨쉬기가 어려웠거든요. 평소에 운동도 하고 건강에도 이상이 없던 터라 그냥 '잠을 잘못 잤나?' 생각했죠."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경기 시간에 맞춰 그는 한 시간 전쯤, 채비를 마치고 집 밖을 나섰습니다.
오전 경기가 끝나고 점심을 먹으며 숨을 돌리는 중에도 양 씨는 속 쓰림 등 컨디션 난조가 이어졌습니다. 두 번째 경기에 들어가면서는 숨이 더욱 가빠지는 걸 느꼈습니다. 운동하며 체온이 오르기 때문이겠거니 생각하던 순간, 양 씨의 심장이 멎으며 그는 곧장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 운동장 달리다가 갑자기 '픽'…재빠른 CPR 로 의식 찾아
놀란 사람들이 재빨리 양 씨 주변으로 달라붙어 CPR(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곁에는 현직 간호사로 근무하는 지인도 있었습니다. 심정지 환자를 살릴 골든 타임은 4~6분. 119 구급대가 도착하기까지 수 분간 영상통화로 원격 의료 지도를 받으며 흉부 압박을 한 끝에, 양 씨의 맥박이 돌아왔습니다.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은 양 씨는 야구장에서 33km 떨어진 제주 시내 한 종합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평소라면 40분 정도 걸릴 거리였지만 '구급차 우선 신호 체계' 덕에 30분도 채 되지 않아 병원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요.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이 없다 보니….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에 CPR로 의식을 되찾았는데, 심폐소생술을 받으면서 제 늑골이 모두 부러져 있었다고 해요. 어떻게든 절 살리려고 도와주시고 애써주신 119구급대원을 비롯한 모든 분께 지금도 감사합니다."
급성 심근경색증 진단을 받은 그는 지금도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심장 재활 운동을 받고 있습니다. 해군 장교 출신으로 평소 건강이라면 자신 있었던 그도, 심정지 사고 이후로는 식습관과 생활 습관까지 완전히 바꾸었다고 말했습니다.

"현역 시절,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수십 번 교육받고 훈련했던 심폐소생술로 제가 먼저 제2의 삶을 얻게 됐습니다. 지금도 운전하다가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나면 먼저 양보하게 돼요. 응급 상황을 직접 겪어보니 더욱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나와 내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긴급 차량에 대한 배려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 1분 1초 급한 생명…저절로 파란불 바뀌고 구급차 에스코트도
2023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급성 심장 정지 환자는 3만 3천여 명. 인구 10만 명당 65.7명꼴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4.9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3배 넘게 많은 수치입니다.
급성 심정지 환자는 빠른 응급 처치가 필요합니다. 4~6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통해 혈액과 산소 공급을 재개해야 하는데, 늦어질수록 뇌 손상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심장이 멈추면서 4분 이상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뇌세포 손상이 시작되고, 6분이 넘어갈 경우 사망에 이르거나 깨어나더라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 같은 심정지 환자 골든 타임을 확보하기 위해 제주에서는 소방과 자치경찰단이 협력하는 이송 체계를 만들어 지난해 4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구급차가 멈춤 없이 달릴 수 있게 신호등이 자동으로 바뀌고,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자치경찰이 길을 트며 구급차를 호위하는 방식입니다.
제주도소방본부는 지난 3일, 이 같은 긴급차량 우선 신호 시스템 시연회를 열었습니다. 제주소방서에서 출발한 구급차와 소방차 행렬이 5.6㎞ 구간(제주대학사거리~제주시청)을 운행하는 데에 8분이 걸렸습니다. 일반적인 신호 체계를 따르면 15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제주도소방본부 관계자는 "구급차에 연결된 단말기와 GPS를 통해, 신호등이 있는 구간을 지날 때 빨간불은 좀 더 일찍 꺼지도록 앞당기고, 파란불은 조금 더 길게 유지되게 하는 것"이라며 "시스템을 운영한 지난해 거리 10㎞당 약 2분 24초 출동 시간을 단축하고, 속도도 지난해 시속 56.99㎞로 전년보다 시속 9㎞ 이상 빨라졌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렸지만, 양보하지 않는 차량도 여전히 눈에 띄었습니다. 이날 구급차와 소방차를 앞질러 갑자기 끼어드는 렌터카에 출동 차량 발목이 잡히기도 했습니다.
제주소방서 119재난대응과 양준환 소방장은 "응급 환자를 이송할 땐 1분 1초가 정말 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심장 박동이 다시 돌아왔을 때 환자가 어느 만큼 일상생활이 가능해질지를 좌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 긴급 차량 다가오면…일시 정지, 차선 변경·급정거 주의
'왱왱' 사이렌 소리가 들려올 때, 구급차에 길을 어떻게 양보해야 할까요? 소방차가 접근할 때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도로 상황에 맞춰 양보해야 합니다.
도로에서 소방차를 보면 일단 가까운 가장자리로 붙어 서행해야 합니다. 일방통행로, 편도 1, 2차로에서는 도로 오른쪽 가장자리에 세우거나 서행합니다. 편도 3차로 이상에서는 양옆 가장자리로 이동해 양보합니다.
교차로에서는 비상등을 켜고 오른쪽 가장자리에 멈춰서 소방차 진로를 방해하지 않도록 합니다. 보행자는 소방차가 지나간 다음에 길을 건너야 합니다. 소방차에 진로를 양보하지 않으면 과태료 최대 200만 원을 물 수 있습니다.
[연관 기사]
119구급차 지날 때 ‘파란불’…긴급차량 우선 체계 (2025.07.03. KBS 뉴스9제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95133
“사이렌 울리면 비켜주세요”…소방차 길 터주기 요령은? (2024.08.22 KBS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4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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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7-07 07:00:02
- 수정2025-07-07 13:03:22

제주에 사는 32살 양유덕 씨는 지난해 12월 제2의 삶을 선물 받았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심정지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날, 신혼 1개월 차였던 그는 제주시 한림읍의 한 야구장에서 동호회원들과 오전부터 야구 게임에 한창이었습니다.
"그날 새벽 4시쯤 자다가 깼어요. 갑자기 숨쉬기가 어려웠거든요. 평소에 운동도 하고 건강에도 이상이 없던 터라 그냥 '잠을 잘못 잤나?' 생각했죠."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경기 시간에 맞춰 그는 한 시간 전쯤, 채비를 마치고 집 밖을 나섰습니다.
오전 경기가 끝나고 점심을 먹으며 숨을 돌리는 중에도 양 씨는 속 쓰림 등 컨디션 난조가 이어졌습니다. 두 번째 경기에 들어가면서는 숨이 더욱 가빠지는 걸 느꼈습니다. 운동하며 체온이 오르기 때문이겠거니 생각하던 순간, 양 씨의 심장이 멎으며 그는 곧장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 운동장 달리다가 갑자기 '픽'…재빠른 CPR 로 의식 찾아
놀란 사람들이 재빨리 양 씨 주변으로 달라붙어 CPR(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곁에는 현직 간호사로 근무하는 지인도 있었습니다. 심정지 환자를 살릴 골든 타임은 4~6분. 119 구급대가 도착하기까지 수 분간 영상통화로 원격 의료 지도를 받으며 흉부 압박을 한 끝에, 양 씨의 맥박이 돌아왔습니다.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은 양 씨는 야구장에서 33km 떨어진 제주 시내 한 종합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평소라면 40분 정도 걸릴 거리였지만 '구급차 우선 신호 체계' 덕에 30분도 채 되지 않아 병원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요.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이 없다 보니….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에 CPR로 의식을 되찾았는데, 심폐소생술을 받으면서 제 늑골이 모두 부러져 있었다고 해요. 어떻게든 절 살리려고 도와주시고 애써주신 119구급대원을 비롯한 모든 분께 지금도 감사합니다."
급성 심근경색증 진단을 받은 그는 지금도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심장 재활 운동을 받고 있습니다. 해군 장교 출신으로 평소 건강이라면 자신 있었던 그도, 심정지 사고 이후로는 식습관과 생활 습관까지 완전히 바꾸었다고 말했습니다.

"현역 시절,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수십 번 교육받고 훈련했던 심폐소생술로 제가 먼저 제2의 삶을 얻게 됐습니다. 지금도 운전하다가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나면 먼저 양보하게 돼요. 응급 상황을 직접 겪어보니 더욱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나와 내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긴급 차량에 대한 배려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 1분 1초 급한 생명…저절로 파란불 바뀌고 구급차 에스코트도
2023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급성 심장 정지 환자는 3만 3천여 명. 인구 10만 명당 65.7명꼴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4.9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3배 넘게 많은 수치입니다.
급성 심정지 환자는 빠른 응급 처치가 필요합니다. 4~6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통해 혈액과 산소 공급을 재개해야 하는데, 늦어질수록 뇌 손상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심장이 멈추면서 4분 이상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뇌세포 손상이 시작되고, 6분이 넘어갈 경우 사망에 이르거나 깨어나더라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 같은 심정지 환자 골든 타임을 확보하기 위해 제주에서는 소방과 자치경찰단이 협력하는 이송 체계를 만들어 지난해 4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구급차가 멈춤 없이 달릴 수 있게 신호등이 자동으로 바뀌고,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자치경찰이 길을 트며 구급차를 호위하는 방식입니다.
제주도소방본부는 지난 3일, 이 같은 긴급차량 우선 신호 시스템 시연회를 열었습니다. 제주소방서에서 출발한 구급차와 소방차 행렬이 5.6㎞ 구간(제주대학사거리~제주시청)을 운행하는 데에 8분이 걸렸습니다. 일반적인 신호 체계를 따르면 15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제주도소방본부 관계자는 "구급차에 연결된 단말기와 GPS를 통해, 신호등이 있는 구간을 지날 때 빨간불은 좀 더 일찍 꺼지도록 앞당기고, 파란불은 조금 더 길게 유지되게 하는 것"이라며 "시스템을 운영한 지난해 거리 10㎞당 약 2분 24초 출동 시간을 단축하고, 속도도 지난해 시속 56.99㎞로 전년보다 시속 9㎞ 이상 빨라졌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렸지만, 양보하지 않는 차량도 여전히 눈에 띄었습니다. 이날 구급차와 소방차를 앞질러 갑자기 끼어드는 렌터카에 출동 차량 발목이 잡히기도 했습니다.
제주소방서 119재난대응과 양준환 소방장은 "응급 환자를 이송할 땐 1분 1초가 정말 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심장 박동이 다시 돌아왔을 때 환자가 어느 만큼 일상생활이 가능해질지를 좌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 긴급 차량 다가오면…일시 정지, 차선 변경·급정거 주의
'왱왱' 사이렌 소리가 들려올 때, 구급차에 길을 어떻게 양보해야 할까요? 소방차가 접근할 때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도로 상황에 맞춰 양보해야 합니다.
도로에서 소방차를 보면 일단 가까운 가장자리로 붙어 서행해야 합니다. 일방통행로, 편도 1, 2차로에서는 도로 오른쪽 가장자리에 세우거나 서행합니다. 편도 3차로 이상에서는 양옆 가장자리로 이동해 양보합니다.
교차로에서는 비상등을 켜고 오른쪽 가장자리에 멈춰서 소방차 진로를 방해하지 않도록 합니다. 보행자는 소방차가 지나간 다음에 길을 건너야 합니다. 소방차에 진로를 양보하지 않으면 과태료 최대 200만 원을 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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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구급차 지날 때 ‘파란불’…긴급차량 우선 체계 (2025.07.03. KBS 뉴스9제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95133
“사이렌 울리면 비켜주세요”…소방차 길 터주기 요령은? (2024.08.22 KBS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4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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